모성, 그 생명과 평화 - 박완서 초기소설론
하응백(문학평론가) 한국소설사에서부계문학의 전통은 완고하고도 집요하다. 근대소설의 초입에 있는 이광수의 『무정』이 가짜 아버지를 찾아 나선 것이었다면, 염상섭의 『삼대』는 부계의 계통 세우기 소설이었다. 이런 전통은 6·25와 분단의 비극적 현대사가 점철되면서 7,80년대는 김원일·이문열·임철우의 소설로, 90년대는 김소진의 소설로까지 연결된다. 이들의 소설에서 아버지는 부재하거나 있다 하더라도 제 구실을 하지 못함으로 인해, 아들은 아버지를 찾아 나서거나 스스로 아버지가 되어야 했고, 그것이 여의치 못할 때는 어떻게든 아버지를 복권시켜야 했다. 그것은 자신의 아들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부재하거나 제 구실을 못할 때 자신의 교육과 성장은 어머니가 전적으로 맡게 된다. 이때의 어머니는 모성과 부성을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다. 이 어머니는 대개 불완전하게 마련이어서 아들은 어머니에게서 모성과 부성의 결핍을 동시에 발견한다. 때문에 아들은 어머니에게 반발하거나 연민을 느낀다. 그러한 결손의식 속에서 한구그이남성작가들은 스스로 아버지를 찾고 스스로 아버지가 되어야만 했다. 한편 딸은 어떠할까. 공적인 부성회복의 최고의 명제였던 한국의 상황과 가부장적 사회구조 속에서 딸의 성장과 어머니 됨은 아들의 아버지 찾기나 아버지 됨에 비해 부차적인 문제로 인식 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근대사에서 남편의 부재는 아내에게 집지킴과 자식의 양육이라는 이중의 과제를 부과했고, 딸은 아들의 후원자 혹은 보조자로 기능할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토지』의 주인공 서희는 할머니의 고토를 되찾고 지키는 것과 함께 자식의 생산과 교육을 절대적인 사명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토지』의 서희를 어머니 세대로 본다면, 그녀의 딸 세대인 김원일이나 이문열 소설들의 누이는 역할이 미미하거나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딸의 성장이나 어머니 됨의 문제는 남성문학의 주류에서는 괄호 속에 넣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 소외된 지점에서 박완서 문학은 출발한다. 박완서의 『나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