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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권위를 죽이다.

홍세화 장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우리는 원불교 파리교당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원불교 파리교당은 파리 남쪽 교외 장티이라는 곳에 있고 길상사라는 절도 파리 동쪽 교외에 있다.   프랑스에서는 지금 불교에 대한 관심이 잔잔하게, 그러나 꾸준히 높아가고 있다. 특히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는 프랑스의 지식인, 문화인 사회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대중적인 인기도 누리고 있다. 불교는 프랑스에서 가톨릭(65% 정도). 회교(5% 정도), 개신교(2% 정도) 다음으로 유태교를 따라잡아 네 번째 종교 (1% 이상)로 자리잡아가는 중이다.   프랑스에서 이렇게 불교에 대한 관심도 높아가고 그에 따라 절도 늘어나는 추세인데. 그러나 백담사 같은 절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혹시 생기더라도 그곳에서 한용운 선생이 전두환 씨의 행적에 가려지는 일 같은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돈의 권위도, 권력의 권위도 그 자체만으로는 인정되지 않는 땅이기 때문이다. 어떤 돈인가, 어떤 권력인가가 더 중요하다.   프랑스인들은 지상 최고의 권위를 죽였던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1793년 1월, 루이 16세는 단두대 앞에서 "나는 죄없이 죽는다"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 죄가 없다고 말했지만 당시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다는 죄가 있었다. 혁명가 로베스피에르는, "나는 그에게 아무런 원한이 없다. 그러나 그는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대혁명은 루이 16세를 죽이면서 당시 지상 최고의 권위를 죽였던 것이다.   막스 베버가 독일에 프랑스혁명과 같은 역사적 경험이 없다는 것을 아쉬워했던 이유는 그가 '권위의 폭력'에 대해 생각했기 때문이다. 혁명은 폭력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이다. 이에 반해 권위의 폭력은 상시적이다. 1971년 한국에서 3선개헌 뒤에 치른 대통령선거 때의 일이었다. 나는 나중에 장모님이 될 분에게 누구를 찍었느냐고 여쭤 보았다.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대통령을 찍었지...